사물의 이치/경제학산책

공정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J I Yoon 2012. 9. 26. 08:30

금강산관광이 가능했던 2008년 우리나라의 한 관광객이 북한 초병의 사격으로 사망했다. 이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다. 관광가이드들이 그렇게 강조했음에도 불구하고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넘어간 관광객의 잘못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전에도 그런 사건이 있었고 그 때마다 거액의 벌금을 물고 풀려났다고 하니 경솔한 관광객을 사살하기까지 한 북한 초병의 행위는 분명 지나친 처사이었음이 틀림없다.

더욱 더 놀라운 것은 이 사건을 대하는 우리나라 국민들의 반응이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착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이 같은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 항상 침착했던 것은 아니다. 천안함 침몰의 원인을 둘러싸고 아직도 벌어지고 있는 치열한 공방과 비교해 볼 때 금강산 관광객 사살사건을 대하는 국민들의 태도는 냉담하기까지 하다.

이 침착함이 의외의 것임을 판단하기 위해 약간의 상상력을 동원해 보자. 오로지 상상력에만 근거한 것으로 허구의 사실에 기초한 사고실험임을 전제로 했음을 강조한다. 만약 국군에 의해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실되었다면 어땠을까? 시끌시끌했을 것이 뻔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보다 대담한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만약 미군에 의해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실되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고도 남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대책위가 만들어질 것이고 도심에서는 대규모의 반미촛불시위도 벌어질 것이다.

만약 일본 자위대에 의해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실되었다면 어땠을까? 온 국민이 분노할 것이고 애국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것이다. 게다가 교과서왜곡과 독도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는 우리나라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가장 궁금한 건 마지막 질문이다. 만약 중국군에 의해 우리나라 관광객이 사살되었다면 어땠을까? 정말로 궁금하다. 누가 분노하고 누가 항의할 것인가? 다시 한 번 더 강조하지만 오로지 상상력에만 근거한 사고실험임을 잊지 말자. 하지만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우려스러운 일이지만 동일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중국에 대하여 다르게 반응할 것만 같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로 공정한가?

공정성을 쉽게 정의하면, 동일한 문제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칸트가 정언명령을 도출할 때 네 행동의 준칙이 보편적인 것이 되게 하라고 말했던 것과 같다. 따라서 어떤 문제에 대해 갑이라는 기준을 적용하여 판단하였다면 이와 동일한 문제에 대해서도 갑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옳다. 만약 동일한 기준에 대해 다른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면 이는 공정성이라는 중대한 원칙을 위배한 것이 된다.

공정성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편파성이다. 편파성이란 내가 하면 로맨스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불륜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동일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는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고 다른 하나는 추악한 불륜이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전혀 다른 잣대를 적용하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안들을 보면 공정성 기준 하나만으로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적지 않다. 동일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이 하면 선의에 의한 행위이고 다른 사람이 하면 선의에 의한 행위가 아닌가? 동일한 행위였다면 두 사람의 행위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여 다음과 같이 판단되어야 한다. 두 사람의 행위 모두가 선의에 의한 것이나 또는 두 사람의 행위 모두가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어야 한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의 행위는 선의에 의한 것이고 또 다른 한 사람의 행위는 선의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공정성의 원칙을 잃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옳다고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