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심심치 않게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라는 용어를 듣는다. 2008년 미국 경제위기 이후 빈번하게 접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인지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글에서는 왜 양적 완화가 등장하게 되었으며, 양적 완화란 무엇이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약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약간의 배경지식
미국의 양적 완화에 관한 언론보도를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우선 연방기금금리(federal funds rate)라는 이자율이다. 연방기금금리는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이 거래할 때 이용하는 이자율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이용하는 이자율을 기준금리라고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연방기금금리는 모든 이자율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회사채수익률은 ‘연방기금금리+α’라는 식이다.
또 하나 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Federal Open Market Committee)라는 기관이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공개시장운용을 통해 연방기금금리를 조절하는 기관이다. 이외에도 미국 중앙은행제도에 대해 알아야 할 몇 가지가 더 있지만 이번 호에는 이 정도만 알아 두기로 하자. 나머지 중요한 기관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기로 한다.
양적 완화는 왜 시작되었는가?
한국은행법 제1조에는 한국은행의 목적이 ‘물가안정을 도모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물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표현은 광범위하게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익숙한 경제용어로 바꾸어 쓰면 ‘완전고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중앙은행의 2가지 중요한 책임이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다.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를 곤두박칠치게 만들었다.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0.3%, 2009년 –3.1%로 급락하였고 그 여파는 전세계로 퍼져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2008년 –1.0%, 2009년 –5.5%이었으며 유로지역의 경제성장률도 2008년 0.4%, 2009년 –4.4%이었다. 경제성장률의 하락은 곧바로 실업률의 상승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실업률은 2007년 4.6%에서 2008년 5.8%, 2010년 9.6%로 급상승하였다. 다른 나라의 상황도 비슷하였다. 일본의 실업률도 2007년 3.8%에서 2009년 5.1%로 급상승하였으며 유로지역의 실업률도 2007년 7.6%, 2010년 10.1%, 2012년 11.4%로 급상승하였다.
이즈음 되면 각국의 중앙은행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중앙은행이 가장 선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미국 중앙은행제도의 핵심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이하 연준으로 약칭)는 파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그 목표는 명확하다.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진작하고 실업률을 낮추려 했던 것이다.
본래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2007년 9월 이전까지 5.25% 수준에서 유지되었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징후가 뚜렷해지자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를 급격히 인하하였고 2008년 4월에는 2%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였을 때 아무도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에 2008년 12월까지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를 거의 제로수준으로 인하하였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연방기금금리는 제로와 다를 바 없는 0.0010~0.0015%에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금리인하로 충분하지 않은 것이 명확해졌다. 연방기금금리를 제로수준으로 낮추어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방기금금리를 (-)로 낮출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더 이상 연준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장인 벤 버냉키는 초유의 카드를 빼들었다. 바로 양적 완화라는 정책이었다.
유동성함정
대학교의 거시경제학 수업시간에 으레 배우는 개념 중의 하나가 유동성함정(liquidity trap)이다. 20세기의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가 처음 사용했던 것이지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만(Paul Krugman)이 1998년 부활시키면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다.
크루그만의 유동성함정은 미국 연준이 직면한 어려움을 정확히 보여 준다. 이자율이란 아무리 낮추어도 제로 이하로 낮출 수 없다. 문제는 그런 상황이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경제를 회복시키려면 이자율을 낮추어야 하는데 더 이상 낮출 수 없는 상황, 그것이 크루그만이 말한 유동성함정이다.
대표적인 예는 바로 일본이다. 1990년대 초 카미카제버블이 꺼지면서 일본은 첫 번째 잃어버린 10년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도 또 다시 잃어버린 10년을 지켜보아야 했으며, 2013년 현재에도 세 번째 잃어버린 10년이 없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물론 일본의 이자율은 제로수준까지 떨어진 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경제가 회복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으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보인다.
미국에서도 유동성함정이 실제로 나타났다. 미국의 연방기금금리는 제로나 다를 바 없는 수준까지 인하되었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으며 실업률은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 상황에서 연준이 사용할 수 있는 통상적인 통화정책이란 사실상 없다.
버냉키의 양적 완화
벤 버냉키(Ben Shalom Bernanke)는 2002년 미국 연준의 이사가 되었고 2005~2006년에는 부시행정부에서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의장을 역임한다. 이어서 2006년 연준의장으로 취임했지만 취임 직후부터 금융위기를 수습해야 하는 어려운 책임을 맡게 되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버냉키는 즉각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하였다. 5.25% 수준이던 연방기금금리를 불과 1년 여만에 제로수준까지 낮추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에 양적 완화라는 강력한 정책을 추진하기에 이른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연방기금금리를 인하하기 위하여 단기재무성채권을 매입해야 한다. 따라서 단기재무성채권을 매입하다보면 연방기금금리는 낮아지고 보통의 경우라면 경제는 회복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연방기금금리가 거의 제로에 가까워졌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않았고 실업률은 여전히 높았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연준이 취할 수 있는 통상적인 정책은 사실상 없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아무리 증권을 매입해도 더 이상 연방기금금리를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냉키가 준비한 양적 완화는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정책이다. 즉 연방기금금리가 제로에 가깝지만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증권을 매입하는 것이다.
왜 이런 정책이 도움이 된다는 말인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명목이자율과 실질이자율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명목이자율은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이자율이다. 반면에 실질이자율은 명목이자율에서 인플레이션율을 뺀 이자율이다. 예를 들어 은행이자율이 3%라고 하자. 이건 명목이자율이다. 그런데 인플레이션율이 4%이었다고 하자. 그러면 실질이자율은 –1%이다. 명목이자율은 제로보다 낮을 수 없지만 실질이자율은 제로보다 낮을 수 있다.
연준이 더 이상 이자율을 낮출 수 없다는 말은 명목이자율을 낮출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제활동에서 중요한 건 명목이자율이 아니라 실질이자율이다. 실질이자율이 낮아질 때 소비와 투자가 증가하고 경제성장률이 회복되며 실업률은 낮아진다.
양적 완화의 논리는 바로 이것이다. 양적 완화를 이용하면 명목이자율을 낮출 수는 없지만 실질이자율을 낮출 수는 있다. 이를 위해 연방공개시장위원회가 계속 증권을 매입하자는 것이다. 그러면 시중에 더 많은 돈이 풀리고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다. 그렇다면 실질이자율을 제로보다 더 낮은 수준까지 떨어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경제는 회복된다.
버냉키의 부상
2006년 버냉키를 연준의장으로 지명한 사람은 공화당의 조지 부시대통령이었다. 그래서인지 2008년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2010년이 되면 버냉키가 물러나고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가 연준의장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다. 당시 서머스는 백악관국가경제회의 위원장(우리나라의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에 해당)이었다.
로렌스 서머스라는 이름이 익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사실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인연이라기보다 악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지 모르는데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에 빠졌을 때 IMF의 정책처방을 지지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역임했던 골수 민주당원으로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하자 핵심경제참모가 된 사람이다. 게다가 서머스는 버냉키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은 대단한 경제학자이다. 28세에 하버드대학교에서 종신교수에 오른 신화적인 인물일 뿐만 아니라 노벨경제학상보다 받기 어렵다는 클라크메달(John Bates Clark Medal)의 수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2010년 오바마 대통령은 버냉키를 다시 연준의장에 지명하였고 민주당원이자 더 뛰어난 경제학자 출신인 로렌스 서머스는 백악관국가경제회의 위원장에서 물러났다. 이제 버냉키의 독무대가 펼쳐진 셈이다. 그만큼 버냉키의 통화정책은 지지를 얻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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