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소득분배에만 관심을 가질까?
실증경제학과 규범경제학
경제학자들은 가격, 경제성장률, 이자율, 소득분배 등 다양한 경제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득분배에만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경제학자들이 쓸데없는 문제를 연구한다고 생각하며, 정작 필요한 소득분배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식의 비판은 타당하지 않다. 비전공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가격, 경제성장률, 이자율 등의 문제도 소득분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분배를 유일무이한 목표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가격, 경제성장률, 이자율 등은 중요한 문제임에 틀림없다.
이 문제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실증경제학(positive economics)과 규범경제학(normative economics)의 차이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실증경제학은 경제현실을 ‘있는 그대로’ 연구하고 규범경제학은 ‘어떤 것이 바람직한가’를 연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는 실업을 얼마나 증가시키는가”는 실증경제학의 관심사이고 “최저임금을 얼마나 인상해야 하는가”는 규범경제학의 관심사이다. 동일한 문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매우 다르다.
경제학자와 비(非)경제학자의 차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경제학자들은 주로 실증경제학을 연구하는 반면 비경제학자들은 규범경제학에만 관심을 갖는다. 물론 그건 당연한 일이다. 비전공자들의 본업은 실증경제학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증경제학의 연구는 본래부터 경제학자들의 몫이었다. 잘못된 것은 경제학자들의 실증경제학연구를 애써 무시하려는 경향이다.
규범경제학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특히 경제정책에 관한 논의에서 규범적 접근의 중요성은 충분히 강조되어야 한다. 다만 이에 대하여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첫째 규범경제학적 접근에는 윤리학이나 정치학 등 많은 학문과의 소통이 필요하다. 따라서 경제학이 홀로 다루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둘째 규범경제학적 논의를 위해서라도 실증경제학은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둘째 문제이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의 10% 인상을 판단하려 한다고 하자. 이 문제는 규범경제학적 문제에 속한다. 하지만 이 판단을 위해서 실증경제학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최저임금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실업률은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저임금인상을 판단할 때 이것이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이 실업률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실증경제학연구를 하였다고 하자. 그런데 최저임금 10% 인상이 실업률을 1% 올린다고 알려져 있을 때와 최저임금 10% 인상이 실업률을 0.1% 올린다고 알려져 있을 때를 비교해 보자. 어느 경우에 최저임금의 10% 인상이 더 설득력이 있을까? 당연히 후자일 때가 아닐까? 이처럼 실증경제학은 규범경제학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대표적인 예는 소득재분배의 문제이다. 소득재분배를 강화할 것인가의 문제는 규범경제학에 속한다. 하지만 이 판단을 위해서도 실증경제학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소득분배도 중요한 문제이지만 경제성장은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득재분배문제를 판단할 때 이것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은 당연히 고려되어야 한다. 그런데 소득재분배확대가 경제성장률을 크게 훼손한다고 알려져 있을 때와 소득재분배확대가 경제성장률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을 때를 비교해 보자. 어느 경우에 소득재분배확대가 더 설득력이 있을까? 당연히 후자일 때가 아닐까? 이처럼 규범경제학은 실증경제학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경제학자들도 규범경제학적 접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과학적 판단에만 치중하다보니 실증경제학이 윤리적 측면을 도외시한다는 주장은 경제학계 내부에서도 끊이지 않고 제기되는 문제이다. 윤리학을 포함한 타학문과의 소통을 통해 규범경제학을 보다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 향후의 과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무리 규범경제학적 접근을 중시하더라도 실증경제학을 무시해선 안 된다. 규범경제학은 실증경제학의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럴 경우에만 규범경제학은 책임있는 정책적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